피타고라스의 일생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570년경 사모스섬에서 태어난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다양한 선생님들 아래에서 공부하며 광범위하게 여행을 다녔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뒤 피타고라스는 이탈리아 남부의 도시 크로톤에 학교와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이 공동체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원칙들을 따랐고, 그 구성원들은 피타고라스학파라고 알려졌습니다. 피타고라스의 명성은 널리 퍼져 로마를 비롯한 이탈리아 전역에서 그의 말을 들으려고 찾아왔습니다. 또한 피타고라스의 밤 강의에는 무려 6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를 만나려고 모였습니다. 그들은 그의 집을 ‘데메테르의 신전’이라 부르며 그가 다니던 좁은 길을 ‘뮤즈의 성소’라고 불렀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세상 모든 것의 시작을 ‘수’로 보았고 직각 삼각형에서 빗변의 길이의 제곱은 다른 두 변의 길이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발견하게됩니다. 이 정리는 기하학과 삼각법에 널리 적용되고 있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업적
《피타고라스 정리》 - 이집트 사람들은 세 변의 길이의 비가 3:4:5일 때 직각삼각형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왜 직각삼격형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의 수학자들은 이집트에서 많은 지식을 배운 후 왜 그렇게 되었는지 하나씩 따져가면서 체계적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발견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2명의 친구가 직각삼각형 모양의 땅을 만들고 직각삼각형의 각 변을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땅을 만들어 똑같이 나누어 가지려고 합니다. 이때 직각삼각형에서 밑변과 높이를 각각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은 직각삼각형의 빗변을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와 같습니다. 이집트 사람들도 직각삼각형을 토지 측량에 이용했지만 이론적으로 왜 그렇게 되는지 설명한 사람은 피타고라스입니다. 즉 피타고라스 정리는 ‘직각삼각형에서 두 변의 길이의 제곱의 합은 빗변의 길이의 제곱과 같다’는 것입니다.
《수학적 기여》 - 피타고라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비율, 기하학, 수론에 대한 연구를 포함하여 수학에 상당한 기여를 했습니다. 그들은 수의 신비로운 중요성을 믿었고 다양한 수학적 관계를 탐구했습니다.
《음악과 수학》 - 피타고라스는 음악을 수학의 한 지류로 보았으며 정수론·기하학·천문학·음악의 네 학과를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보아 음계론을 수학과 물리학·천문학과 연결시켜 젼개하였습니다.. 그는 음계 간격에서 수학적 비율을 발견하면서 수학과 음악 사이의 연결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천체의 움직임과 수학적 비율 사이의 연결을 암시하는 개념인 구들의 조화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일화
《피타고라스 컵》 - 전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는 탐욕을 처벌하는 술잔인 피타고라스 컵을 발명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컵을 채우면 숨겨진 튜브를 통해 내용물 전체가 쏟아져 나와 절제의 교훈을 가르칩니다.
《무리수의 발견》 -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2의 제곱근과 같은 무리수의 발견은 피타고라스 학파를 불안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 발견이 우주의 합리적이고 질서 있는 본성에 대한 피타고라스 학파의 믿음에 도전하면서 피타고라스학파 내부의 위기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그들의 일원이었던 히파수스가 규율을 깨고 무리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피타고라스를 둘러싼 역사적 사실과 전설이 뒤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학과 철학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수세기 동안 지속되어 고대와 중세의 수학적 사고 과정을 형성했습니다.
《철학자》 - 피타고라스는 최초로 ‘철학’을 말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플리우스의 참주 레온이 피타고라스에게 ‘그대는 누구인가?’라고 물어보자 피타고라스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Philosopher)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